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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표 '강경파 쇼' 발언에 민주당 '발칵'

<동아일보> 인터뷰 논란, 일파만파... 김진표 "협상파, 매국노 매도 말라"

등록|2011.11.10 18:52 수정|2011.11.10 18:52

▲ 김진표 원내대표(자료사진) ⓒ 유성호

"당내 강경파의 주장은 (한미FTA) 내용도 잘 모르고 무조건 반대하는 게 선이라고 생각하는 강경한 당 지지자들에게 '쇼' 한 번 보여주겠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김진표 민주당 원내대표가 9일 <동아일보>와 인터뷰에서 이 같이 말한 사실이 알려지자 파문이 커지고 있다.

한나라당에서는 '반색'했고, 민주당 의원들은 "면전에 인분을 투척한 격"이라며 흥분했다.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김 원내대표의 낙선 운동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김 원내대표는 10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동아일보> 기자가) 나를 격동시켰고, 과장·증폭해서 기사를 쓰긴 했지만 큰 흐름에서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라며 자신이 한 발언임을 인정했다.

그는 "'ISD(투자자-국가 소송제도) 폐기 후 비준 처리'는 정부나 한나라당이 받을 수 없는 얘기로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이는 결국 FTA 파기 선언과 같다"며 "지금은 재협상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ISD 폐기'가 당론인 것은 맞지만, 실제 협상에 나섰을 때 폐기를 전제로 깔면 협상 자체가 이뤄지지 않으므로 'ISD 재협상'을 조건으로 내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 당내 강경파들에 대해서는 "이런 저런 상황과 내용을 잘 모르는 분들은 강하게 밀어붙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여주기 위한 것인데 국민들이 가장 싫어하는 방법"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물리력을 동원해서 막으면 결국 농·축산업 대책과 법안·예산에 대해 합의해 놓은 것이 물거품된다"며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하고 18대 국회가 무능 국회로 끝나 버리면 지지하던 국민들도 떠날 텐데 내년 총선이 어떻게 되겠나, 야당 전체에 바보 짓을 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또, 그는 "강경하게 대처해서 정말 막을 수 있다는 강경파들의 주장이 옳지만, 다수당이 원하는 바를 처리하려 했을 때 안 된 적이 한 번도 없다"며 "원내대표가 (협상파와 강경파) 중간에서 너무 힘들다"고 토로했다.

"피해자들 면전에 인분투척, 사퇴하라"... "공천 주지 말라" 트위터도

이에 대해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반색'했다. 홍 대표는 이날 오전 최고위원회에서 김 원내대표의 발언을 거론하면서 "민주당 강경파들은 반미 이념 전선으로 몰아가거나 총선용으로 몰아가는 행동을 삼가 달라"로 촉구했다.

민주당은 '발칵' 뒤집혔다. 김 원내대표의 즉각적인 사퇴 요구까지 나왔다. 유선호 의원은 "의원들의 총의를 모아 결정한 한미FTA 당론을 흔들지 말라"고 날을 세웠다. 그는 이날 성명을 통해 "충격을 금할 수 없다"며 "'최소한 한미FTA의 최대 독소조항인 ISD를 폐기하지 않는다면 한미FTA 비준은 있을 수 없다'는 당 입장은 확고하다, 당의 입장을 스스로 번복하려는 시도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민주주의는 결과보다 과정이요, 절차"라며 "우리가 숫자가 부족하니 한나라당의 강행처리에 당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최대한 실리라도 챙겨야 한다는 패배주의에 빠지지 말자"며 '몸을 던져 못 막으면 어떻게 하냐'는 김 원내대표를 향해 직격탄을 날렸다.

이종걸 의원도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냈다. 그는 "김 원내대표의 발언은 한미FTA 반대 투쟁에 온 몸 던져 앞장선 개혁진보진영과 피해자들 면전에 인분투척한 격"이라며 "우리가 쇼를 하고 있다면 김 원내대표는 한나라당 2중대, 한나라당의 트로이 목마 노릇을 하고 있다는 거냐"며 힐난했다. 그는 "김 원내대표는 현재의 한미FTA 비준안을 그대로 통과 시키려는 명분 쌓기만 돕고 있는 것 아니냐"며 "발언 내용이 사실이라면 책임지고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당의 한 관계자도 "자신의 지역구에서 배지 한 번 더 얻기 위해서 당론을 거스르려는 것"이라며 "FTA를 통과 시킬 마음이 앞서 해보지도 않고 포기하자는 건데 차라리 김 원내대표 스스로 '한미FTA를 찬성한다'며 원내대표를 그만두는 게 낫다"고 쏘아 붙였다. 그는 "몸으로 막겠다는 게 쇼라면, 의원들 동원해서 절충안에 사인받게 한 자신이 쇼를 한 것"이라며 "정말 정정당당하면 '절충안'에 사인했다는 의원들 명단부터 공개하라"고 꼬집기도 했다.

트위터에서도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선대인 선대인경제전략연구소 소장은 트위터(@kennedian3)에 "민주당, 내년 총선에서 김진표 공천 주지 말 것을 요구한다, 아니면 정체성에 맞게 한나라당 보내든가"라며 "민주당 소속으로 나오면 낙선운동 벌인다, 스파이만큼 해로운 건 없다"고 일갈했다. 트위터 이용자 'sevenjoy7'도 "'한번이라도 날치기 막은 적이 있냐?'는 김진표 의원 눈에는 응집된, 국민과 나라를 위한 진정한 정치세력을 갈망하고 지지할 준비 되어 있는 시민이 안보이는 듯"이라 한탄했다. 이처럼 비난 여론이 드세짐에 따라 김진표 원내대표를 비롯해 이른바 '절충안' 사인을 주도한 의원들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 28일 오후 여의도공원 부근에서 집회를 열던 '한미FTA 국회비준 저지 범국민대회' 참가자들이 한강 둔치를 통해 국회의사당 북문앞에 집결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권우성


"기자가 날 격동시켜... 과장·증폭했지만 큰 흐름에선 차이 없어"

다음은 김진표 원내대표와 나눈 일문일답 전문이다.

- 인터뷰 내용은 맞나.
"어젯밤에 전화를 받았는데 (기자가) 나를 격동 시켰다. <동아일보>가 과장·증폭해서 쓰긴 했는데 큰 흐름에서 차이가 있는 건 아니다."

- 민주당의 당론이 정확히 뭔가.
"민주당의 당론은 현재 상태의 나쁜 한미FTA에 대해서는 반대한다는 게 기본 입장이다. 그런데 미 의회가 한미FTA를 비준해서 우리의 선택 폭이 좁아졌다. 우리가 몇 가지를 두고 재협상을 요구하면 아예 FTA를 안 하겠다는 것이라고 (미국 측이) 받아들이게 되니, 한미FTA의 문제점을 쉽게 알리고 여론 호응도를 높게 하기 위해 ISD 폐기를 주장했다.

농·축산업이나 피해 보전 대책은 지난 10월 31일 내가 황우여 원내대표와의 협상을 통해 민주당이 주장한 것의 95% 이상 얻어냈다. 내가 그 협상안에 서명한 것을 두고 공격을 많이 받았지만 어쨌든, 우리가 협의한 걸 (여당이) 없던 걸로 한다는 건 불가능한 상황이다."

- 민주당 의원들이 '절충안(FTA 비준 후 재협상)'에 대해 서명한 것은 어떤 맥락인가.
"지난 의총(10월 31일)에서 'ISD 폐지 여부에 관한 재협상을 시작하자'고 결론 내렸다. 그런데 이후에 야당 의원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나부터도 'ISD는 반드시 폐기돼야 한다'고 강력하게 얘기하게 됐다. 그러다 보니 한나라당 쪽에서 '민주당은 무조건 강경·충돌 입장이냐, 손학규 대표 얘기를 들어 봐라, 더 강경해진 것 아니냐'는 오해가 생겼다. 이에 의원들에게 확인을 받자는 차원에서 몇몇 민주당 의원들이 서명을 주도한 것이다."

- 지난 의원총회가 끝난 후 간담회에서 김 원내대표는 'ISD 유지에 관한 양국 간 재협상 논의를 즉시, 지체 없이 시작하도록 하는 약속을 미국으로부터 받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민주당 의원들이 서명 받은 내용은 'FTA 비준 직후 재협상'이다. 각기 다른 내용 아닌가. 
"표현의 차이는 있고 재협상 시점에서 상이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국가 간의 재협상을 한다는 것은 어차피 지금 즉시 준비에 착수해야 한다. 사실 (의원 총회 결정이나 의원들이 사인 받은 내용은) 같은 건데 문제는 미국 행정부가 이를 받아들이냐에 달렸다."

"잘 모르면서 극렬하게 SNS하는 젊은 분들, 협상파 매국노 취급"

- 그동안 민주당은 'ISD 폐기'를 얘기해 온 것 아닌가. 입장이 달라졌나.
"ISD 폐기가 당론은 맞지만, 'ISD 폐기 후 비준 처리 절차에 동의'는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정부나 한나라당이 받을 수 없는 얘기다. ISD 폐기는 1년이 걸릴지 2년이 걸릴지 모를 사안이다. 미 의회가 ISD가 포함돼 있는 한미FTA를 비준했는데 한국에서 ISD를 폐기하지 않으면 비준하지 않는다고 하면 결국 FTA 파기를 선언하는 것과 같다. 지금은 재협상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다. 18대 국회 내에서 ISD 폐기를 확실히 약속 받는 건 우리가 강대국이고 미국이 약소국인 경우에도 불가능하다.

결국 반대 방법의 선택 문제다. 물리력을 동원해서 막으면 결국 농·축산업 대책과 법안·예산에 대해 합의해 놓은 것이 물거품된다.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하고 18대 국회가 무능 국회로 끝나 버리면 우리를 지지하던 국민들도 떠난다. 국민들이 가장 보기 싫은 모습만 보여줘서 내년 총선이 어떻게 되겠나. 야당 전체에 바보 짓을 하는 것이다. 강경하게 대처해서 막을 수 있다고 믿는 분들이 많다. 정말로 막을 수 있다면 강경파들의 주장이 옳다. 그러나 다수당이 원하는 바를 처리하려고 시도했을 때 안 된 적이 한 번도 없다. 우리가 여당일 때도 그랬다. 한미FTA에 관해 국민 여론 대다수는 투표에 참여해 반대하라는 의견이다. 거기에 협상파들의 고민이 있다. 원내대표가 (협상파와 강경파) 중간에서 너무 힘들다."

- 물리력 동원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인데, 미국과 'ISD 재협상'을 하겠다는 약속을 받지 않아도 물리적 저지는 안 하겠다는 것인가.
"ISD 재협상을 하겠다는 약속은 반드시 미국으로부터 받아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의회주의고 뭐고 내팽개치고 몸을 던져서라도 막을 것이다. 의회주의보다도 한미FTA의 해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정치를 그만 두는 한이 있어도 나라를 위해서 절대 막아야 한다."

- 인터뷰에서 '강경파들은 쇼 한 번 보여주겠다는 것'이라고 한 것이 논란이 되고 있다. 
"쇼라는 표현까지 썼나 안 썼나, 잘 모르겠다. 이런 저런 상황과 내용을 잘 모르는 분들은 강하게 밀어붙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여주기 위한 것인데, 대부분의 국민들이 가장 싫어하는 바다.

몇몇 소수의, 내용을 잘 모르면서 극렬하게 SNS에 열심히 활동하는 젊은 분들은 협상파를 매국노 취급한다. 내용을 잘 알면 그런 선택은 안 하리라고 본다. 어떤 것이 애국하는 길이냐 이거다. 야당 의원으로서 책임을 다해 농·축산업, 중소기업을 보호하고 해독을 막는 길을 최대한 확보해야 한다. 어떤 길이 나라를 위하고 다음 선거에서 이기는 길인지, 협상파를 일방적으로 매도하지 말고 충분히 토론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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